이석걸 회고록
새마을운동의 요람이자 발상지인 문성마을 성공사례 회고록
이석걸(78)
전 기계면 새마을지도자 협의회장
초대 영일군 새마을지도자 협의회장
새마을의 태동
내가 공직생활을 마치고 기계면 현내리에서 방앗간, 이발소 목욕탕 업을 경영하고 있을 때인 1970년 면장 김두 락의 권유로 경상북도가 녹화사업의 일환으로 푸른 경북이라는 슬로건하에 각 읍면동에서 1명씩 자원지도자를 선발 버스 8대에 태워 4박 5일간 전국의 산업단지와 잘 개발된 도시, 낙후한 농촌 활폐한 산야 등을 견학하였다.
견학 중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깊은 감명을 받고 돌아와 내 고장 기계면을 한번 개발해 보겠다는 의욕으로 김두락 면장을 방문하여 견학 소감과 우리면 개발계획 등을 설명하여 협조를 얻어 36개 동장회의를 개최하고 나의 견학 소감과 개발계획을 역설, 1970년 10월 각 동에서 동장, 개발위원, 자연부락당 1명 총 145명을 선발 2 박 3일에 걸쳐 내가 갔던 일부 지역을 견학하고 돌아왔다.
모두가 낙후한 우리 고장을 새마을로 가꾸는데 찬성하면서도 누구 하나 먼저 추진하려 하지 않아 우선 지형적으로 마을이 평지이고 집단화되어 잘만하면 파급효과가 큰 대곡1리 정태순동장을 설득 시범부락으로 선택하여 여러 차례 마을주민 회의를 열어보았지만 해보겠다는 동민의 의욕과 단결력 부족으로 무산되고 말았다.
생각 끝에 나는 시범부락 선정은 지형적 조건이 아니라 주민의 협동심과 동장의 지도력이 있는 동리가 우선이라 생각하고 다른 부락을 찾던 중 문성동에서 62년 홍선표라는 젊은 동장을 선출하여 마을 주민들이 단합하여 마을 자체적으로 함께 잘살기 위하여 노력하고 67년 극심한 한해 때 주민협동으로 마을 앞 하천에 집수암거를 개발하고 30마력의 양수기를 공동구매하여 공중 양수로 천수답을 수리안전답으로 만들고, 길을 고치고, 소득증대를 위하여 상정 조성과 홀치기 등의 사업을 추진하고 있었고 홍선표동장이 저와 동갑에다 둘도 없는 친구사이라 마음을 모아 성공 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하여 문성동을 시범부락으로 재선정 하였다.
나는 새로 시범부락으로 선정된 문성동을 수 없이 내왕(우리집에서 거리는 3km이고 전기, 전화도 없었음)하면서 홍선표 동장과 지금까지 해 온 우수사례를 바탕으로 새마을 가꾸기 운동 시범사업을 추진하여 기계면 전역에 파급하기로 하였다.
이후 저는 홍선표 이장, 최태섭, 박종길, 홍순태, 이희준 개발자문위원 과 영분 부녀회장과 함께 동 회의를 수 없이 열어 도박하지 않고, 술만 먹고, 자조 자립 협동 정신을 발휘하여 자체적으로 해오던 함께 잘살기 운동정신을 바탕으로 좀더 활기차고 새로운 문성리를 가꾸는데 동참할 것을 결의하고 다음 사업 계획을 세우고 실천 하였다.
개발계획
- 사업명 : 새마을 가꾸기
- 세부 사업명 : 마을안길 넓히기, 초가지붕 개량, 지개 벗기 운동, 부엌, 담당, 화장실 개량
- 1. 마을 안길 넓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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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넓히기에 들어가는 문전옥답을 돈이 없어 살수가 없어 지주들을 설득, 무상으로 지원받는데 가장 애로점이 많았다. 지주들을 밤낮으로 찾아가 문성리와 후손들을 위해서라도 도로에 들어가는 땅을 희사하며 줄 것을 애원 간청 하여 20여일 만에 홍순략씨를 비롯하여 10여명으로부터 승낙을 받아 마을 중심에 5m 너비의 반듯한 길을 만들었다.
첫째 사업인 마를 안길 넓히기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김두락(면장), 이상필(의용소방대장)과 함께 김덕엽 경상북도지사를 방문 푸른경북 선진지 견학단의 한사람이었음을 말하고 낙후한 기계면 문성리 마을의 변한 사항과 기계면을 농한기에 새로운 마을로 가꾸는 계획을 설명하였다. 그리고 기회가 있으면 지사님께서 문성리를 한 번 방문하여 주민들을 격려하여 주시기를 부탁드리자 이에 흔쾌히 승낙하시고 3일 만에 관계 직원들을 대동 문성리를 방문 동민격려와 아낌없는 지원을 약속하고 가는 길에 저의 집에 들러 가족까지 격려하고 가셨다.
이에 나는 물론 문성동민과 기계면민은 사기가 충천하며 새마을 가꾸기 사업에 한층 더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 2. 지붕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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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36년전 우리나라 경제상 정부차원에서도 농촌의 초가지붕을 개량할 꿈도 꾸지 못할 때에 모로지 「하면된다」라는 신념으로 이 어려운 초가지붕 개량을 새마을 가꾸기의 가장 중요한 사업으로 선정하였다.
초가지붕개량 방법으로는 기와, 함석, 스레트 세가지가 있는데 기와는 연목과 기둥이 약해서 무너질 위험이 있고, 함석은 연탄가스로 부식되기 때문에 부적절하여 미관상도 좋고 무너질 위험도 없고 연탄가스에도 안전한 스레트로 개량하기로 결정하였다.
초가지붕을 개량하면 보기도 좋을 뿐만 아니라 남는 볏짚은 소를 먹이고 가마니를 짜고 새끼 꼬기 등에 사용하고 화재 예방에 좋고 한 번 개량하면 영구적으로 노력도 안 들어 1석 5.6조의 효과를 볼 수 있음을 설득 시켰으나 막대한 자금이 드는 스레트 구입이 커다란 문제가 되었다.
돈은 없고 새마을 가꾸기 사업의 성패가 달린 지붕개량을 하려면 스레트를 외상으로 구입하려고 나는 무작정 서울, 대전 등지의 우리나라 3대 스레트 회사(한국, 제일, 금강)를 방문, 지붕개량의 취지와 중요성 본 사업이 성공시 전국에 파급효과 우리나라의 현실 농촌사항 등을 설명하고 서로가 이익이 되는 지붕개량사업에 동참할 것을 역설 대금은 외상으로 3회 분할 조건을 제시 하였으나 번번이 거절당하고 말았다. 대전, 서울 등지를 8차례나 내왕하며 사기꾼이다. 돌았다. 미친놈 이라는 등 온갖 냉대와 수모를 겪으면서도 모직 지붕개량에 소요되는 스레트 구입만이 나의 머릿속에 있었고 9번째 상경 마침내 한국 스레트 회사로부터 당신의 성의에 감동 스레트대금을 3회 분할 조건에 줄 것이니 외상 대금의 지불 보증을 요구했다.
돌아와 내가 채무자로 동장등 36명이 연대 보증하여 스레트 외상 구입을 성사 시켰다. 문성동에서 32호 초가지붕 개량성공을 시작으로 지붕개량의 파급효과는 참으로 대단하며 1년만에 기계면 3, 200호 중 반이 넘는 1,632호의 지붕이 개량되는 신화를 남겼다.
- 3. 지게 벗기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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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게를 지기 싫어 도시로 떠나는 이농민이 속출하였다. 이제 마를 안길도 넓혀 놓았으니 리어커를 공급하여, 지게를 벗어 던지게 해야 겠다고 생각하여 기계면 소재지에서 철공소를 경영하는 변근호를 찾아 취지를 설명, 리어커 대금 3회 분할 상환 조건으로 1,420대의 리어커를 제작 기계면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배부식을 열고 경상북도 공보실에서 연예인단을 기계에 보내 면민 잔치를 열었다. 나는 2년여 동안 문성리에서 살다시피 하며 1차 사업을 성공리에 마치게 되었다. 이 운동 중 모토바이 사고로 2 주간 영남병원에 입원하였으며 36년이 지난 지금도 얼굴에 흉터가 남아 있다.
- 4. 부엌, 담장, 화장실 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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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녀회장 황영분의 지도아래 농번기에는 전 동민이 누에를치고 농한기에는 홀치기등을 하여 농가소득증대에 앞장서고 빨래터 조성, 담장, 부엌, 화장실 마을 환경 개선 등을 부인회원들이 일심동체가 되어 지속적으로 실시하여 성공하였다.
박정희 대통령 문성동 방문
이와 같은 사실이 중앙에까지 알게 되어 문화공보부에서 영화 제작진을 이 곳에 보내어 자조의 마을 문성리를 촬영 전국 시·군 공보실에 보내어 홍보하고 극장에서도 방영하였다. 나는 이와 같은 새마을 가꾸기 사업의 공적을 인정받아 1971년 7월 29일 중앙청 제 1회의실에서 대통령으로부터 대한민국 국민포장을 직접수여 받았다.
돌이켜 보면 그 누구도 해낼 수 없는 엄청난 일을 해냈던 것입니다. 역사상 군수 한 분도 다녀간 일이 없는 기계면 문성리에 1971년 9월 17일 대통령께서 경제부처 장관, 전국의 시·도지사, 시장·군수를 대동 시찰하시고 이어서 문성리의 새마을을 배우러 견학단들이 줄이어 방문한 이 모든 것들이 저 이석걸를 주축으로, 홍선표 마을동장, 문성마을주민, 영일군직원이 함께 이루어낸 이곳, 새마블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이곳이 새마을운동의 발상지라 확신합니다.
그때를 회고하며..
역사의 한 장을 바꾸고 세기에 빛나는 엄청난 일을 성공시킨 36년 전의 새마을 운동의 감회가 남다르다. '앞장서자'라는 리본을 가슴에 달고 영일군 기계면 초대 새마을지도자협의회장을 맡아서 자조 자립 협동정신을 고취시키며 돌아다녔던 일, 마를 안 길 넓히기에 들어 가는 토지를 희사 받은 일,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스레트를 외상으로 구입 지붕개량을 성사시킨 일, 지게벗기 운동에 리어커를 공급 한 일 등 엄청난 일을 한 것이 보람으로 남는다.
나는 지금은 78세에 황혼에 든 나이로 늘 새마을 운동에 정신없이 다니던 지난세월을 회상하며 새마을운동의 발상지인 문성리에서 저 이석걸이 새마을 운동의 역사를 창조하며 남긴데 대하여 자부심과 긍지를 지니고 여생을 보내고 있다.
끝으로 잊혀져가고 있는 새마을운동 발상지인 기계면 문성리를 재조명 하는데 노력하여 주신 장세헌도의원, 최영만, 이상범 시의원과 박승호시장님 이하 전·현직 관계공무원들께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