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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운동함께하는 변화 도약하는 포항

역사적 배경

발상지의 역사적 배경 새마을운동 발상지 : 포항시 북구 기계면 문성마을

발상지의 역사적 배경

새마을운동 발상지인 문성마을은 농사를 짓기 어려운 하천건너 산기슭에 위치하며 가난을 숙명처럼 여기며 살아 왔으나 5.16혁명 후 홍선표라는 젊은 이장을 선출하여 힘을 합쳐 잘살아보자며 양계와 누에치기 등으로 소득증 대에 힘써 모던 중 '66~67년 극심한 한해로 농사를 지을 수 없어 주민들이 하나, 둘씩 마을을 떠나기 시작했다.

이에 홍선표 마을이장과 홍순락(전 민선면장) 등이 우리가 살길은 기계천 지하수를 개발하며 한해를 극복하는데 있다고 판단하여 부락 회의를 수차례 열고 주민들을 설득하여 '67년 봄에 마을공동 지하수개발과 양수장설치 공사로 천수답을 수리 안전답으로 바꾸는데 성공하자 주민모두가 함께하면 된다는 희망과 용기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마을공동 사업 양수장 확대, 길 넓히기, 천수답상전 조성, 양계등)를 하며 자체적으로 잘살기 운동을 추진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70년부터 마을 안길 넓히기, 지붕개량, 리어카공동제작과 지게 벗기운동 등 정부지시 사항인 『새마을 가꾸기 운동』를 성공적 으로 추진하여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 잘사는 마을로 변모하였다.

고 박정희 대통령께서 1970년 4월 22일 한해대책 회의 유시에서 『새마을 가꾸기 운동』이라고 해도 좋고 『알뜰한 마을 만들기』 라고 해도 좋을 것이니, 스스로 의욕을 가지고 노력하는 마을은 정부에서 적극 지원하는 방식으로 하라는 지시를 기계면 문성리가 성공적으로 수행 하자 1971년 9월 17일 영일군 기계면 문성마을에 전 국무위원, 전국 시·도지사, 시장·군수를 대동하여 현지 시찰하시면서 전국 시장·군수는 현지에 돌아가서 문성부락과 같이 지도하고 실천하며 “새마을정신 즉 자조 자립 · 협동하는 정신주입에 점화 역할을 하고 문성동과 같은 “새마을을 만들어 라고 지시하신 것은 분명 이곳이 새마을 운동의 발상지임을 전국에 알리는 자리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경북 포항시 기계면 문성동를 방문하며 시찰하시면서 주민과 대화하신 내용을 문화공보부 제공, 국립영화제작 소에서 제작하여 전국 극장에 방영한 국정홍보용 대한뉴스 영상자료 내용을 발췌해 보면 “뜻이 있는 곳에 반드시 길이 있다는 이런 말이 있는데 영일군의 문성동 홍이장 지도하에 '67년부터 한 불과 3~4 년 동안에 어수선한 마을이 오늘날 이렇게 부흥이 되었고 그 부락이 전 군에 있는 농민들이 전부 궐기를 할 수 있는 이런 계기가 되었다. “새마을 가꾸기 운동”에 한 부락에 시멘트 한 10만원정도 되는 걸 줘가지고 480만원어치 일을 단 몇 달 동안에 해치웠다.

정부가 지원해 준대 약 48배의 일을 단 몇 달 동안 해치웠다. 하니, 이건 놀랄만한 사실이고 농민들 머리 속에 이러한 정신이 일어난다는건 우리 농촌에 하나의 혁명이 일어났다고 이렇게 봐도 좋을 겁니다. 이러한 당시 대통령의 말씀 속에서 영일군의 문성동 홍이장 지도하에 67년부터 한 불과 3~4년 동안에 어수선한 마을이 오늘날 이렇게 부흥이 되었고, 우리농촌에 하나의 혁명이.. 하는 내용에서도 새마을 역사가 포항시 기계면 문성동에서 시작됨을 알 수 있는역사적 배경이다.

1971.9.17 지방장관회의 유시문중(새마을발상 발언내용)나는 농촌 근개회의 관건이 우리 농민들의 가꾸기 운동을 전국적으로 파급 시켜야 하겠습니다..(중략)새마을 가꾸기 운동은 내가 작년 4월 22일에 있었던 지방장관 회의 때 여러분들에게 한번 연구 해보라고 한 것인데 지난 1년 동안 여러 부락에서 훌륭한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이 회의가 끝나면 여러분들은 영일군 기계면 문성동과 거창군 마리면 3개 부락의 새마을 가꾸기사업의 성과를 보게 되겠지만 이러한 부락을 점차로 우리 농어촌 전역에 확대해 나가야 우리 농촌이 하루 속히 근대화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여러분들은 이 새마을 가꾸기 정신을 국가개발의 기본정신으로 삼아 그 계몽에 힘써야 하겠으며,.... (중략) 새 물결을 아래위로 파고를 때 이 운동은 그만큼 빠른 속도로 파급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국가의 역사적 배경

새마을운동은 1970년대의 가난을 물리치고 경제기적을 일구어낸 역사적 운동으로 현대사의 한 획을 긋는 중대한 국가 혁명정책이다. 1970년 4월 22일 한해대책을 숙의하기 위하여 소집된 지방장관회의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수재민 복구대책과 아울러 넓은 의미의 농촌재건운동에 착수하기 위하여 자조 자립정신을 바탕으로 한 마을 가꾸기 사업을 제창하고 이것을 “새마을가꾸기운동이라 부르기 시작한 데서 시작되었다.

1971년 전국 3만 3,267개 행정리 동( 同)에 시멘트 335포대씩 균일적으로 무상 지원하여 각 마을마다 하고 싶은 사업을 자율적으로 하도록 하였다. 이 결과는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났는데, 첫째는 정부가 무상 공급한 시멘트로 부락민들이 자체 노력과 자체 자금을 투입하여 마을이 필요로 하는 숙원사업을 해낸 경우이고, 둘째는 시멘트의 무상공급을 받았지만 뚜렷한 사업을 하지 못한 경우이다.

정부는 첫째행태의 반응이 있는 16, 600개 부락에 대하여 또다시 시멘트 500포대와 철근 1t씩을 무상공급하면서 자발적인 협동노력을 장려하였다. 이와 같은 경쟁적 선별적 방식으로 점화된 새마을사업은 정부의 절대적인 지원으로 전국적으로 확대되면서 이것이 단순한 농촌개발사업이 아니라 공장 도시 직장 등 한국사회 전체의 근대화운동으로 확대 발전하였다.

이 과정에서 새마을운동은 그 정신적 기조로서 근면·자조·협동를 설정하게 되고 그 추진 방법으로서는 우수한 지도자의 헌신적 봉사를 기조로 하고 동시에 정부에 의한 적극적인 지원이라는 방식을 택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새마을운동은 대통령의 절대적인 후원과 우수한 남녀 새마을지도자, 그리고 정부 3자의 연합이 핵을 이루면서 추진된 국민운동이었다. 새마을운동은 초기에는 단순한 농가의 소득배가운동이었지만 이것을 통하여 많은 성과를 거두면서부터는 도시 직장 공장에까지 확산되어 근면·자조·협동을 생활화하는 의식개혁운동으로 발전하였다.

샘플이미지

이러한 운동을 통하여 경제적으로 자립하여 선진국대열에 꼭 진입해야 한다는 의지를 국민들에게 강하게 심어준 조국근대화운동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 현대사에 "조국근대화" 과업의 일환으로 1970년 초 박정희 대통령이 허경연 정책보좌관과 함께 이 운동을 주창하였으며 이는 고도성장과 능률위주의 행정추진으로 개인적 자유와 일부 사회적 행위가 통제되므로 정권정당화용 이라는 일부 비판적 시각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정치의 근본은 “바르게" 다스림에 있다. 나라를 바르게 다스리자면 백성들로부터 믿음을 얻는 것이 으뜸이고, 백성을 배불리 먹이는 것이 그 출발이며 새마을운동은 무엇보다 백성을 가난에서 벗어나게하고 잘살게하는데 목적을 둔 운동으로 시작되었다. 이 운동이 지향하는바 사회적 목적이고 이념 이라 할 수 있는 대목은 당시 최고 통수권자의 언명에 강력하게 표현되어 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우리 스스로가 우리 마을을 우리 손으로 가꾸어 나간다는 자조/자립/협동정신으로 땀 흘려 일하며 가난을 물리치고 잘 살아보자" 는 일념으로 새마을 역사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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